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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세계일보] _ 단독 _ 몰래 독립자금 댄 기생들의 항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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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90회 작성일 19-03-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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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몰래 독립자금 댄 기생들의 항일운동


[3.1운동 100주년] 숨겨진 항일독립운동의 꽃... 통도사에서 흔적을 찾다/ 양산통도사 석등에 이름 새겨

                       / 시주방식으로 독립자금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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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감정기 기생들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증거가 통도사에 있는 것으로 처음 밝혀졌다.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과 양산 항일운동기념사업회 김명관 상임이사의 구술 녹취록을 통해서다.

28일 해당 녹취록에 따르면 통도사 산문(매표소) 앞에서 부도밭 앞까지 이어진 길이1km, 폭5m의 솔숲길

'무풍한송길'. 양 길가에는 길이3.8m 크기의 석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시주를 한 사람의 이름과

날짜 등이 새겨진 것으로 예전 것과 최근 것이 섞여 있다. 이 석등 중 13개는 ‘장해탈심’, ‘김평등심’과 같이

시수자의 이름이 4글자로 되어 있다. 장은 성, 해탈심은 불명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다. 시주자가 시주를 한

정확한 시기는 이후 사람들이 돌로 깎아내 알 수 없다. 다만 석등 아래 기단부분에 ‘町三(정삼)’ 등 일본에서

마을을 의미하는 글이 새겨져 있어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석등이 바로 일제강점기

기생들이 통도사에 시주를 하는 방식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댄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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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에 '장해탈심'이라고 새겨져 있다. 장은 기생의 성, 해탈심은 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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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에 '김평등심'이라고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기생이 시주형태로 독립운동 자금을 댄 흔적이다.

 

당시 통도사의 주지였던 구하스님(1872~1965년)은 2005년까지는 친일 승려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후 임시정부 재무차장이었던 우산 윤현진 등을 통해 거액의 독립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구하스님은 통도사 재정으로 독립자금을 준 것을 숨기기 위해 기방 출입을 해 자신이 착복한 것으로 꾸몄다.

이 때문에 승적을 박탈하는  ' 체탈도첩'이 되기도 했다. 구하스님은 또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라는 불교 승려들의 문건에 '김축산'이라는 가명으로 서명을 하기도 했다.

이 선언서는 불교계의 항일투쟁선언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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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이 일제강점기 기생이 통도사에 시주형태로 독립운동 자금을 댄 슨적인 석등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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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통도사의 주지였던 구하스님

 

성파스님은  " 그 당신 여성들은 공양미 정도의 시주를 할 수 있었을 뿐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해 석등을 세울 수 없었다"며 "석등에 새겨진 것이 기생들의 이름이며, 구하스님이

기방 출입을 하는 척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시절의 것이라고 노스님을 통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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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무풍한송길 초입에 있는 ' 무풍교 시주 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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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교 시주 석각에서'‘妓萬年春(기만년춘)’이라는 이름과 당시 통도사 주지였던 ‘金九河(김구하)’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기생들이 독립운동 자금을 댄 흔적은 하나 더있다. 무풍한송길 초입에 있는 '무풍교 시주석각'이다.

가로 196㎝, 세로 85㎝ 크기의 돌에는 시주자의 이름과 시주액 등이 새겨져 있다. ‘대왕 11년 가을 9월’

즉, 1922년, 구하 스님이 주지이던 시절 만들어진 것이다. 이 돌에도 ‘妓萬年春(기만년춘)’이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기생 만년춘’이라는 의미다. 지금의 무풍교 아래로 계곡 너른 바위 위에 새겨진 많은 사람들의 이름 중에도 기생의 이름이 여럿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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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무풍교 아래 계곡 너른바위에는 무풍교 시주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은 " 구하스님이 일본의 눈을 피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댔다는 시기와 일치한다."며

"무풍교를 새로 세운다는 명목으로 기생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아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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