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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현대불교] "통도사, 한국전쟁 당시 야전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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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60회 작성일 19-10-0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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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한국전쟁 당시 야전병원이었다"

1일 용화전 미륵불 복장물 공개
확인된 연기문서 증거들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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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통도사가 육군병원으로 운영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료가 발견됐다. 주지 현문 스님은 용화전 미륵
불소조좌상 복장 유물 연기문을 설명하며 3000여명의 부상가자 통도사에서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통도사가 한국전쟁 당시 부상병을 위한 치료 공간으로 활용됐음을 알려주는 문건이 발견됐다. 전쟁 당시 유물이
훼손되고 스님들이 머물 공간을 내어주는 등 시대 아픔을 위로하고 민생과 함께 한 통도사의 행보가 드러나면서
귀감이 되고 있다.

6. 25 전쟁 당시 3000여 군인
부상자 치료 위해 전각 비워줘
성보 훼손 및 교회로도 이용해
내년 한국 전쟁 70주년 천도재

통도사(주지 현문)는 10월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용화전(龍華殿) 미륵불소조좌상 복장 유물을 공개하며 호국불교로
활동한 통도사 역할을 설명하고 중요성을 강조했다.

통도사 경내에서 주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주지 현문 스님은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 복장 유물인 연기문을 설명하며
“한국전쟁 6.25 당시 3000여명의 부상병을 치료하는 육군병원이 통도사 내 설치 됐고 부상병 치료를 위해 스님들이
도움을 줬다. 연기문에는 당시 통도사 사찰과 각 법당, 요사채 및 암자는 무너지고 깨져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용화전
미륵불은 영원히 파괴 돼 못 볼 지경이라 설명되어 있다”며 “당시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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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소조좌상 복장 유물 연기문. 연기문에는 “불기 2974년 경인 6월 25일 사변 후(佛紀二千九百七十七年庚寅六月二十五日事變後)
국군상이병 3000여명이 입사하야(國軍傷痍兵三千餘名이入寺하야) 2979년 임진 4월 12일에 퇴거(二九七九年壬辰四月十二日에退去)
즉 사찰 각 법당 각 요사 각 암 전부 퇴패되는(則寺刹各法堂各寮舍各庵全部頹敗는) 불가형언중 용화전 미륵전은 (不可形言中龍華殿彌勒佛은)
영위파손 되야 불가견여(永爲破損되야不可見餘)” 라 적혀있다.

연기문은 “불기 2974년 경인 6월 25일 사변 후(佛紀二千九百七十七年庚寅六月二十五日事變後) 국군상이병
3000여명이 입사하야(國軍傷痍兵三千餘名이入寺하야) 2979년 임진 4월 12일에 퇴거(二九七九年壬辰四月十二日에退去)”
라고 밝혀두고 있다. 이어 “즉 사찰 각 법당 각 요사 각 암 전부 퇴패되는(則寺刹各法堂各寮舍各庵全部頹敗는)
불가형언중 용화전 미륵전은 (不可形言中龍華殿彌勒佛은) 영위파손 되야 불가견여(永爲破損되야不可見餘)”라며
미륵불소좌상 조성 이유를 밝혔다.

현문 스님은 “당시 군인들이 있는 동안 수많은 불상과 경판, 문헌 등 성보문화재가 훼손되고 유실 됐다”며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은 군교회로 사용되기 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상황을 목격한 김진조 의학박사는 군인들이
군홧발로 용화전을 드나들고 불상 앞에 재떨이를 놓고 담배를 피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설명에 따르면 설법전 자리는 당시 텃밭으로 군인들이 소를 잡아먹는 장소로 이용됐고 종이로 만든 경책은 불쏘시개나
휴지로 사용되는 등 경내는 혼란을 겪었다. 하루 10명이 죽어나가며 사중에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 힘든 일들이 매일
이어졌으며 정진하던 스님들은 걸망을 꾸리지도 못한 채 통도사를 비워야 했다. 하지만 일부 스님들은 부처님을 모신
도량을 떠날 수 없다며 부상병 치료를 도왔고 또 사하촌에 머물며 부상병 간호에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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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 유물 수습과정. 유물은 연기문, 미륵상생경, 일체여래전신사리보치진언, 진언,
오륜종자진언, 화취진언, 진언봉투, 복장봉투 등 8점이 발견됐다.

현문 스님은 “전란 중에 축산 구하 스님은 통도사로 피난 온 스님들을 단 한분도 빼 놓지 않고 받아들였다”며
“비록 살림이 어렵고 세상이 어지러웠지만 대중을 위한 자비심으로 맞이한 통도사였다”고 말했다.

통도사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영혼을 위로하는 수륙고혼천도재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또, 용화전 수리 및 보존과
미륵불을 모시게 된 연유를 널리 알린다는 의지를 밝혔다. 용화전 미륵불은 당대 율사 였던 자운 성우 스님과 월국
정기 스님이 모연했으며 1952년에 조성됐다. 미륵불은 한국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발원한 스님들의 마음이 담긴 증거로
중요도가 높다. 복장 유물에는 연기문 외 미륵상생경, 일체여래전신사리보치진언, 진언, 오륜종자진언, 화취진언, 진언봉투,
 복장봉투 등 8점이 함께 담겨 있다. 현재 복장 유물은 통도사 성보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통도사는 수륙고혼천도재를 통해 1000미륵불을 봉안하고 고귀한 희생을 추모하며 나라가 융성하도록 국태민안을 기원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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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현문 스님이 용화전 앞에서 설명을 이어가고 있다. 통도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수륙고혼천도재를 봉행하고
고귀한 희생을 추모할 예정이다.


현문 스님은 “내년이면 6.25 한국전쟁이 70주년을 맞는다”며 “통도사에서 발견 된 이 자료는 격동기의 중요한 사료가 된다.
국가에서 조차 기록되지 않은 내용으로 중요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선대 스님들이 나라가 어려울 때 항상 함께 한
호국불교 역할을 보여주며 통도사가 전쟁 당시 31육군병원 통도사분원으로 활동한 사실을 국민들과 공유 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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