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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불교신문] 손묵광 작가의 아름다운 절지 풍경 ② 양산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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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123회 작성일 21-03-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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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묵광 작가의 아름다운 절집 풍경] ② 양산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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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050m의 영축산 줄기가 남쪽 기슭으로 흘러 금강계단에 멈춰 선 곳에, 부산과 울산의 불심을 아우르는 도량 통도사가 있다.

경내 통도사 홍매가 망울을 터트리면 한반도는 봄소식으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영축산은 원래 부처님이 세상에 계셨을때 <법화경

(法華經)>을 설하시던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는 산을 지칭한다. 그만큼 불법(佛法)이 흥했던 지역이라 도량이 섰다는

증거다. 그 도량은 현재도 부처님 장삼자락 그늘을 덮고 법의 향기를 드날리고 있다.


부처님 사리를 모신 통도사의 역사는 신라 자장율사로부터 시작된다.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은 신앙의 최고 존엄인 부처님

의 법체를 신라 땅에 봉안했다.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 청량산에서 수행하면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정골사리와 가사를

 전수받고 귀국한다. 스님은 우선 국가융성을 위해 황룡사9층목탑에 사리를 나눠 모셨다.이어 왕명(선덕여왕)에 따라 통도사를 창

건해 금강계단을 만들고 이곳에 부처님 정골사리를 모셔 한국불교의 불지종가(佛之宗家)가 태어났다.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주 법당에는 불사이 없고 대신 거대한 불단인 수미단만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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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설화도 의미심장하다. 원래 통도사 터에는 큰연못이 있었다.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 오대산에 들어가 문수보살상앞에서 기도

를 두리던 중 문수보살이 화현하여 가사 한 벌과 사리 및 경책을 주면서 계시(啓示)를 내린다.


"신라국 남쪽 취서산(영축산의 옛이름) 기슭에 독룡이 살고 있는 신지(神地)가 있다.

거기에는 아홉마리의 용들이 살면서 비바람을 일으키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그 연못에 금강계단을 쌓고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큰 재앙을 면하면서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서 천룡이 그곳을 옹호하게 될 것이다."


고국으로 돌아온 자장은 다섯 마리는 오룡동으로 세 마리는 삼곡동으로 보냈으나 한 마리 용만 남았다."제가 이곳에 남아 지금까지

의 잘못을 참회하면서 불법을 수호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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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율사는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악행을 해온 네가 그렇게 살 수 있겠는가?" "저를 이곳에만 남게 해 주신다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자장율사는 허락했다.

"그래 그러면 네가 사는 곳의 연못은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진 옆이다. 그리고 그 연못이름을 구룡신지(九龍神池)라고 부르겠다."


절무에 들어오면 솔향기가 방문객을 맞는다. 천녀사찰의 소나무 숲길은 전국 제일의 산책길로 손색이 없다. 솔바람 소리가 " 쏴~

아!"하고 불어 올 것만 같은 다리의 이름은 '무풍교(無風橋)'다. 자연에서 불어오는 촉감마저 번뇌 녹이듯 없애라는 불법(佛法)의 

가르침일까. 바람은 불어오는데 바람을 맞는 실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그 바람을 맞이했던 수 많은 선지식들은 소나무 숲길 지난 우측 부도원(浮屠園)에 생몰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도열해 있는 부도와

탑비 사적비 수백 기는 장황했던 통도사의 역사를 대변해 준다.
통도사의 가람배치는 ‘영축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지나면서부터 신앙형태에 따라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눠진다.
맨 아래 영역인 하로전(下爐展)에는 영산전을 중심으로 약사전과 응향각 만세루 범종각이 위치하는 사동중정형(四動中停型)의 

배치다. 소위 ‘ㅁ’자형으로 동서남북에 건물이 서고 있는 형태다.


그 다음 공간은 불이문을 지나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중로전(中爐展)이 위치한다. 중심당우인 대광명전에는 비로자나부처님을 모

셨고 그 용화전에는 미륵부처님을 보셨다. 그 앞이 관음전이다. 용화전 앞에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발우모양을 본떠 만든 특이한 

형태의 봉발탑(奉鉢塔)이 서 있다. 용화전 미륵부처님이 가섭에게 다음과 같은 계시를 내렸다 전한다.


“가섭아, 너는 열반에 들지 말고 내 발우와 가사를 간직하고 있어라. 훗날 미륵불이 내려와 용화세계를 펼칠 것이니 그때 발우와 

가사를 펼쳐라.”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불사리탑이 위치하고 있는 상로전(上爐殿)은 통도사의 절정을 보여주는 전각들이 서 있다. 적멸보궁은 대웅

전 금강계단 등의 편액을 각 방향에서 달고 있다. 이어 응진전 명부전 설법전이 상로전을 형성하고 있다. 적멸보궁에는 언제나 

수많은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통도사는 신심으로 뭉쳐진 거대한 덩어리다. 그 중심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고 뭇 중생들의 원(願)을 어루만

져주고 있다.

온 정성 다해 오체투지하며
석가모니불 염송하는 기도객들
마음속에 어떤 원력 담았을까?
그 원이 무엇이든 부처님 가피(加被)
온 법계에 넘쳐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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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본사로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에 위치하고 있다.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 중의 한곳

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선덕여왕 때인 정관(貞觀) 12년 계묘년(癸卯 643)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규모가 작았으나 고려 선종 대에 중창해 금강계단 상부의 석종형 부도와 극락전 앞의 3층석탑, 배례석, 봉발탑 등이 건립됐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됐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 소실됐다. 1603년 송운대사가 재건, 1641년 우운대사가 다시 중건, 대가람의 위용을 갖

췄다. 문화재로는 대웅전(국보 제290호), 국장생석표(보물 제74호), 은입사동제향로(보물 제334호), 봉발탑(보물 제471호) 등 60

여 점이 있다.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통도사 홈페이지 참조

[불교신문3658호/2021년3월23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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